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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레바논의 긴 여정
레바논은 수십 년간의 시리아 지배와 헤즈볼라의 통제에서 벗어나 주권을 되찾고 있습니다. 아사드 정권이 붕괴되면서 이 지역은 신뢰와 민주주의를 재건할 새로운 과제와 기회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시리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레바논의 긴 여정
레바논 국기를 든 남자가 불꽃놀이를 보며, 시리아 반정부 세력이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를 몰아냈다고 발표한 후 베이루트, 레바논에서 사람들이 축제를 벌이는 모습, 2024년 12월 8일 / 사진: 로이터
2025년 1월 27일

“벽에도 귀가 있다.” 이 섬뜩한 표현은 시리아 정권 하에서의 공포를 경험했던 많은 중년 레바논인들에게 깊이 각인된 말입니다.

정치적 반대파의 체포와 실종, 그리고 폭력의 위협은 시리아 당국에 의해 강요된 공포 문화를 레바논에 심어주었습니다.

시리아군은 1976년 6월 1일 처음 레바논에 진입하며 레바논 내전의 평화유지군 역할을 주장했지만, 그들의 존재는 내전이 끝난 후에도 거의 30년 동안 지속되며 레바논에 군사적, 정치적 통제를 행사했습니다.

시리아군이 배치된 검문소는 레바논 전역에 퍼져 있었고, 검열이 만연했으며, 시리아군에 의한 체포는 주로 감금된 기독교 지도자 사미르 자자와 망명 중인 미셸 아운 장군, 그리고 트리폴리와 같은 수니파 거점 지역을 겨냥했습니다.

타이프 협정

레바논 내전은 1989년 타이프 협정 체결 후 1990년에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이 협정은 평화를 가져오려 했지만, 대신 시리아의 레바논 지배를 공고히 했습니다.

협정은 마론파 대통령에서 수니파 총리로 행정권을 이전하는 등 주요 개혁을 도입하며 권력 분배를 보다 균형 있게 조정했습니다.

또한 기독교와 무슬림 간의 동등한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해 레바논의 종파 정치 체제를 재구성했습니다. 협정은 민병대의 무장을 해제할 것을 요구했지만,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점령에 저항한다는 명목으로 예외를 인정받았습니다.

협정은 약 14,000명의 시리아군이 단계적으로 철수할 것을 명시했지만, 시리아는 이를 임시 권한으로 활용해 레바논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남부를 점령하는 동안, 시리아는 레바논의 나머지 지역과 경제를 지배했습니다. 전후 재건 과정에서 전쟁 지도자들과 정치 엘리트들이 시리아 당국의 주도로 부를 분배받았습니다.

라피크 하리리의 암살

1990년대 동안, 사업가에서 총리로 변신한 라피크 하리리는 레바논을 강력하고 독립적인 국가로 재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비전은 시리아와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하리리는 모든 외국군의 철수와 민병대의 무장을 해제할 것을 요구한 유엔 결의안 1559를 지지하며 결국 암살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2005년 2월 14일, 헤즈볼라 소속 살림 아야시가 하리리를 암살하면서 레바논은 충격에 빠졌고, 시리아의 패권 종식을 요구하는 3월 14일 운동이 촉발되었습니다. 2005년 4월 26일, 국내외의 거센 압박 속에서 시리아군은 레바논에서 철수했습니다.

이 승리는 모든 레바논인들에게 축하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시리아 통치 아래 번영했던 일부 레바논인들에게 철수는 버림받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시리아가 거의 30년 동안 레바논에 머무르는 동안, 많은 이들이 안정성과 후원 네트워크를 통해 이익을 얻었으며, 이는 종종 시리아와 연계된 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2005년 시리아군 철수로 생긴 권력 공백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가 빠르게 채웠습니다. 헤즈볼라는 1982년 이스라엘 점령에 저항하는 운동으로 설립되었지만, 1992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레바논의 공식 정치 체제에 참여했습니다.

이 선거는 기독교인들의 대규모 보이콧과 시리아의 압박으로 인해 정치 지도자들이 망명하거나 투옥되면서 헤즈볼라가 정부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시리아 혁명

2004년부터 2013년 사이, 레바논에서는 반시리아 인사들을 겨냥한 정치적 암살이 이어졌습니다. 여기에는 언론인 사미르 카시르와 제브란 투에니, 정치인 피에르 제마옐과 모하마드 차타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2011년 시리아 혁명이 시작되면서, 3월 14일 운동은 시리아 반군과 연대하며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종식을 요구했습니다.

시리아 내전이 격화되면서 200만 명 이상의 시리아 난민이 레바논으로 피신해 이미 취약한 레바논의 인프라에 큰 부담을 주었습니다. 2012년 시리아 정권이 약화되었지만, 헤즈볼라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지원을 받아 군사적으로 개입하며 정권의 생존을 보장했습니다.

이는 레바논이 지역 분쟁에 더 깊이 얽히게 만들었고, 헤즈볼라의 레바논 정치 지배를 강화했으며, 알아사드 정권의 통치를 연장시켰습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주도한 이스라엘 공격 이후 헤즈볼라는 “전선의 단결”이라는 기치 아래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을 지지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이 움직임은 재앙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헤즈볼라 지도부가 큰 타격을 입으며 영향력이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리아 반군은 이들립에서 알레포로 진격하며 거의 저항 없이 알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렸습니다.

레바논 대통령 선거

이 변화는 레바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2025년 1월 9일, 레바논은 내전 이후 처음으로 시리아의 정치적 간섭 없이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될 예정입니다.

수십 년 동안 레바논 대통령은 시리아의 승인을 받아 선출되었으며, 시리아 정권은 종종 레바논 헌법을 무시하며 대통령 임기를 연장했습니다.

이번 선거는 주권과 민주적 권한을 되찾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레바논 의원들이 현대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롭게 대통령을 선출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알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레바논 정치에서 시리아의 영향을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레바논인들에게 아픈 상처를 다시 열었습니다. 수천 가정은 시리아 검문소에서 실종되거나 구금 시설에서 사망한 사랑하는 이들의 운명에 여전히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수감자들의 석방은 정권의 잔혹성을 드러내며 일부에게는 위안을 주었지만, 여전히 답을 찾고 있는 이들에게는 슬픔을 새롭게 했습니다.

약화된 헤즈볼라는 레바논의 민주적 진전을 위한 길을 열었습니다. 2022년 10월 미셸 아운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된 이후, 헤즈볼라와 그 동맹 세력은 의회에서 새로운 대통령 선출을 방해하며 정치 체제를 마비시켰습니다.

헤즈볼라는 여전히 정치적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지만, 시리아와 레바논 내 공급망과 기지가 붕괴되면서 군사적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이는 레바논 내 시리아 혁명 지지 세력에게 헤즈볼라의 국가 기관 장악을 완화할 기회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시리아의 새로운 지도부가 약속을 지킬 수 있다면, 이는 레바논-시리아 관계에 역사적인 변화를 가져오며, 적대감 이후 신뢰와 협력을 구축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또한 이 전환은 양국이 재건할 기회를 제공하며, 튀르키예의 통치 모델과 경제 발전이 잠재적인 참고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평화와 안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거의 고통을 잊지 않고, 이를 더 정의롭고 포용적인 미래를 위한 기반으로 삼는 전환적 정의와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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